본문 바로가기
쭈니 해피의 일상 산책

영화-이터널스 (끝없는 시간을 살아간다는 것)

by junnyhappy 2025. 6. 5.

 

 

 

 

 

영화가 끝나고도 한동안 멍하니 앉아 있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지구 어딘가에서는 보이지 않는 싸움이 벌어지고 있을까, 그런 상상에 빠진다.

이터널스는 마블 영화지만, 이전과는 확연히 다른 리듬으로 흐른다.
웅장하지만 조용하고, 초능력이 있지만 인간적이다.
신화를 보는 것 같다가도, 누군가의 일기를 훔쳐보는 기분이 든다.


사랑의 시작과 달라지는 온도

세르시는 인간을 사랑했고, 인간 안에서 살아가려 했다.
도시를 걷고, 손끝으로 세상의 질감을 느끼며, 변하지 않는 시간을 혼자 견뎌냈다.

이카리스는 그녀를 사랑했지만, 영원을 선택했다.
그는 지구를 위해 태어난 목적을 따랐고, 그 목적 안에서만 숨을 쉬었다.

“We’re not here to lead them. We’re here to protect them.”
— Ikaris

그들의 사랑은 오래도록 이어졌지만, 결국 온도가 달라졌다.
같은 시간을 살아도, 같은 것을 볼 수 없다는 것이 그들을 멀어지게 했다.


진실 앞에서 흔들리는 마음들

데비안츠가 다시 나타났을 때, 이터널스는 각자의 삶을 살고 있었다.
그러나 그 재등장은 단순한 위협이 아니었다.
그들에게 주어진 임무의 진짜 의미를 되묻는 시작이었다.

“You can’t protect any of them.”
— Kro

창조주 셀레스티얼의 계획이 밝혀졌을 때,
그 누구도 완전히 선하지 않았고, 누구도 완전히 악하지 않았다.
믿음은 갈라졌고, 동료는 적이 되었으며, 영원한 줄 알았던 것들이 무너졌다.

서로를 믿고 다시 모였지만,
서로를 지키기 위해서 각자는 다른 방향으로 걸었다.


이별의 순간과 남겨진 감정

이카리스는 끝내 세르시를 향한 마음을 버리지 못했다.
하지만 그 사랑은 세상을 구할 수 없었다.
그는 태양을 향해 날아갔고, 더는 돌아오지 않았다.

“I’ve let you down. I’m sorry.”
— Ikaris

킹고는 전투를 떠났고, 드루이그는 고요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길을 함께했던 이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책임을 감당했다.

남겨진 이들의 얼굴에는 승리도, 패배도 아닌 묘한 여운이 남아 있었다.
그 여운은 차가우면서도 따뜻했다.


자연, 소리, 그리고 여운

마카리가 손끝으로 벽을 읽고, 땅을 느끼는 장면이 잊히지 않는다.
소리 없이 전해지는 감정은 말보다 깊었다.
그녀와 드루이그의 교감은 그 어떤 대사보다 진실했다.

세상의 소리와 움직임을 누구보다 빠르게 읽는 그녀는
가장 조용한 존재로 남았다.

“You’re the only one who made me feel like I belonged.”
— Druig

이 영화가 내게 남긴 것도 그렇다.
요란한 액션이 아니라,
침묵 속에서 울리는 어떤 감정의 떨림.


등장인물 속에 담긴 시간

세르시 (젬마 찬)
조용하고 따뜻한 사람. 세상을 보는 눈이 다른 이터널스와 달랐다.
그녀에게는 전쟁보다 공감이 먼저였고, 그런 마음이 영화의 중심을 이룬다.

이카리스 (리처드 매든)
강하고, 믿음에 충실한 존재.
하지만 오히려 그 믿음이 모든 것을 부수게 된다는 것이 아이러니하다.
세르시와의 관계는 애틋하지만, 결국 돌이킬 수 없는 선택으로 향한다.

드루이그 (배리 케오간)
마음을 조종할 수 있지만, 그는 끝내 자신의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모두가 따르는 규칙을 거부하고 스스로의 길을 선택한, 내게 가장 인상 깊었던 인물.

마카리 (로런 리들로프)
한마디도 없이도 많은 걸 전하는 존재.
그녀의 속도와는 반대로 마음은 누구보다 섬세하다.
드루이그와의 눈빛 교환 하나가 오래도록 남았다.

킹고 (쿠마일 난지아니)
유쾌하고 에너지 넘치는 캐릭터지만,
그 속엔 불멸을 살아가는 피로함이 숨어 있다.
쇼맨십으로 위장한 외로움이랄까.


이터널스는 쉽게 다가가는 영화는 아니다.
그러나 한 발짝 들어서면,
삶의 무게와 관계의 균형, 존재의 의미를 곱씹게 만든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시간 속에서
누군가의 세르시이고, 또 누군가의 이카리스일지도 모르겠다.